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훙커우 공원 의거 (문단 편집) === 몇 시간밖에 쓸 수 없는 [[시계]] === || [[파일:ui3p4ti.jpg|width=300]] || [[파일:attachment/윤봉길/200204260320.jpg|width=300]] || [* 위의 사진은 [[독립기념관]] 제5전시관에 전시된 [[레플리카]]다.] 윤봉길은 폭탄 투척을 실행하기 전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구]]와의 [[최후의 만찬|마지막 조찬]] 자리에서 자신의 새로 산 [[회중시계]]를 김구에게 주고 김구의 낡은 회중시계로 바꿔 품에 넣고 갔다고 한다. >이 시계는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와 바꾸어 주십시오. '''제 시계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는 쓸 일이 없으니까요.''' 또 식장에 가는 길에 김구에게 남은 돈을 다 주었는데 김구가 사양하다가 받았지만 "돈 좀 가져가면 어때서 그렇소?"라고 묻자 윤봉길 의사는 '''"자동차 값 다 치러도 5~6원은 남을 정도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소학교]] [[교사]] 월급이 20원이었고 쌀 한 가마니 값이 5~6원 정도였다.] [[8.15 광복]]을 맞이한 후 김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윤봉길 생가]]를 찾아 윤봉길의 어머니 김원상 여사에게 인사하고 윤봉길과 교환했던 시계를 보여주면서 '''"아드님께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드님 덕분에 광복이 이렇게 빨리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원상 여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들을 사지에 내몬 김구가 원망스럽기도 한 것 같았다고. 이에 김구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한테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해 깊게 탄식하고 시계를 도로 품에 넣었고 시계를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나중에 백범기념관에 김구가 가지고 있었던 윤봉길의 시계만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후 윤봉길의 후손이 윤봉길이 김구에게 교환받은 시계를 가져왔고 현재 이 두 시계는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윤봉길이 떠날 때 김구가 '''"후일 지하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는데 시계가 나란히 전시됨으로써 '''시계로 재회하게 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